2020년, 올 한 해는 다사다난한 한 해이다. 모든 해가 그렇겠지만 특히 더 그렇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이 아닐까 싶다. 많은 러너들이 산으로, 천변으로, 또는 트레드밀이 있는 헬스장으로 가서 자신만의 운동을 하는데, 이 바이러스로 인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운동이라는 가치마저도 미뤄야 하는 고민이 생기기 마련이다. 헬스장을 주로 이용했던 러너라면 문 닫은 헬스장으로 인해서 한숨만 나오고, 어떤 러너는 호기롭게 고가의 러닝머신을 큰맘 먹고 집에 들여놓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러너는 그렇지 못하다. 단순히 운동에 대한 의욕이 꺾이는 것이 아니라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더 우선적인 가치가 생긴 것이기 때문에 잠시 접어두자고 마음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어떻게든 나의 운동 가치관을 위해서 산으로, 천변으로, 도로로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때로는 이른 새벽 도로를 뛰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이들에게는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는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달리기에는 기상요소라는 아주 큰 요인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올해 장마는 전국적으로 40일여 이어졌고 많은 수재민을 발생시킬 만큼 힘든 녀석이었다. 이제 장마가 가고 피해가 복구되니 다시 이어나가고자 하는데 이제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많은 러너들이 일반적인 나인 투 식스(9시 출근, 6시 퇴근)의 형태를 가진 직종에 종사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러너들은 교대근무, 격일근무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일반적인 러너들은 새벽에, 저녁에 운동을 하면서 근근이 이어나갈 수 있겠지만 이와 같은 특수형태 종사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낮에 해야만 할 수도 있고, 일반적인 러너들의 새벽, 저녁처럼 쉽게 시간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모든 러너가 이 여름을 지내는 것에 있어서 각자만의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나는 준비가 되어있는데 뛰지 못하는 날이 많다는 것이다.
자, 뛰지 못하는 날이 많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래, 이 무더운 여름, 1년 내내 열심히 운동하는 나에게 마치 휴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자! 하면서 인정하고 납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러너라면, 단순히 달리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답답함과 찝찝함만이 감당해야 할 부분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에게 있어 일종의 좌절감을 주는 요소가 바로 눈에 띄게 줄어드는 '달리기 능력'일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운동 철학은 연이어 이틀은 쉬지 않는 것이다. 이틀을 쉬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쩌다가 한 번은 괜찮지만 두 번이 되면 버릇이 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일종의 방침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달리지 못하는 사실이 주는. 가장 무서운 점은 달리지 못한다는 그 사실 자체보다 나의 기량이 유지조차 되지 못하고 하락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이런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나부터가 그러한 고민을 안고 여름을 지났기 때문이다. 나처럼 혼자 운동을 해야 하는 여건에 있다면, 분명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동호회나 크루 등 여러 단체에 속한 러너들도 피할 수는 없는 문제임에 틀림없다. 장마가 오기 전, 여름이 오기 전, 분명 하루에 일정 거리(15KM 이상)를 무리 없이 소화해내고 쭉쭉 올라가는 기량을 느꼈는데 불과 1주일, 2주일 만에 10KM를 뛰기도 버겁고, 회복이 안 되는 느낌을 받으며 나만의 일종의 방침과 철학마저도 어기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한 달 350KM-400KM를 꾸준하게 달렸는데, 7월 한 달은 100KM도 달리지 못했다. 그런 사실 자체가 무서웠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분명히 몸은 망가질 텐데, 이 페이스 밖에 안 나오나?, 이게 진짜 내 실력인 건가? 하면서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운 좋게 찾아온 달릴 수 있는 여건에서도 제대로 된 훈련이 될 수가 없었다. 퍼지는 것은 당연하고 부상의 조짐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어떤 한 고수로부터 운동 스케줄을 받아서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내가 이렇게 혼자 다그치고 채찍질해봤자 매일 같이 더러운 기분으로 운동을 마칠 것 같아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방법이었다. 그 고수가 나에게 하라고 해서 내 기량이 향상이 안되다면 이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 그 스케줄이 문제고 날씨가 문제고, 이것이 문제고, 저것이 문제고..라고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중요하게 두고 있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일부분 양심을 져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운동 스케줄을 받고 나서 정말 그대로 따라 했다. 근무여건상 휴식일에 변동을 주고 스케줄을 조금씩 바꾸기는 했지만 그래도 주어진 스케줄은 완수하려고 노력했다. 그 고수는 내가 적어놓은 훈련일지를 보더니 '어떤 이유에서던지 몸이 많이 죽었다, 9월 중순까지는 다시금 기초체력을 올릴 수 있도록, 지겹겠지만 조깅도 많고, 인터벌 같은 기술훈련보다는 기초체력에 중점을 두겠다.' 고 했다. 나는 일종의 위로감을 얻었다.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고, 다시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스케줄에 따라 조깅하면서 나는 생각의 전환을 맞게 된다. 처음 나의 조깅 페이스는 5분 40초에서 6분이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속상했다. 이게 맞는 건가, 이래서 기량이 빠르게 올라오긴 하려나, 평소에 내가 조깅이라고 설정했던 것이 4분 50초, 그리고 늦어봐야 5분이라고 설정을 했는데.. 어쨌든 여러 가지 이유로 속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었다. 하지만, 뛰고 나니 무엇인가 다르게 보였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느린 속도라는 것에 대해서 마음에 위안을 얻었다. 개인적으로는 느린 페이스다 보니 심리적인 안정을 얻었다. 이 정도야 한낮 땡볕에도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편안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페이스 역시도 후반에는 힘에 부치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 페이스가 지금 시기(다운된 나의 몸상태뿐만 아니라, 계절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한)에 나에게 가장 적절한 페이스였던 것이다. 내가 계절적인 요소나 나의 몸상태가 좋았을 때 나왔던 페이스도 그 시기에 가장 나의 몸에 맞는 페이스였던 것도 사실이고 지금 내가 느리게 뛰고 있는 이 페이스도 이 시기에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페이스라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합리화를 하는 문제를 벗어난 것이었다. 이 단순하고도 명쾌한 사실을 왜 알지 못했을까?
간단하게 느낀 점을 말하자면 한껏 끌어올려진 상태에 대한 익숙함에 매몰되어있었던 것이다. 적절하게 줄이기도 하고, 느리게도 뛰어야 하는데 잘 달리던 그때가 나의 기본이라고 생각한 데서 온 오만함이었다. 내가 가진 어떤 기질이나 유전적인 특성, 계절적인 요소를 모두 무시하고 이전의 기억에만 의존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 페이스가 나올 수가 없는 상황에서 달리고 싶지 않게 되고 결국에는 몸이 꾸준하게 다운되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요소, 코로나, 계절적인 요소 등을 핑계로 나 스스로가 나를 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성숙하지 못한 러닝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러너가 나처럼 느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급하게 달리면서 올라오지 않는 기량을 탓하고, 그러다가 부상이 오고 몸이 제대로 망가지면서 중요한 가치라고 여겼던 러닝이나 운동 그 자체를 부정하고 그러다가 결국에는 그만둘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느껴보니 그것은 성숙하지 못한 내 탓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흔히들 이런 슬럼프를 맞게 되는데 이것을 극복할만한 지혜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이 글을 통해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러너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여러 가지 요소로 달리지 못해 몸이 다운되거나, 혹은 슬럼프가 왔을 때, 자신의 최고 기량에 매몰되기보다는, 얼른 털어버리고 조깅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심리적으로 별것 아닌 운동이 결국에는 기본이 되고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길 바란다. 나처럼 거의 두 달을 허우적대며 어영부영하지 말고 심리적으로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조깅부터 다시 시작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예전 기량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이제 2주 차 스케줄을 받고 있는데,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던 예전의 기량이 나오고 있다.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니 다시 운동할 맛이 난다. 나는 모쪼록 이 글을 읽고 있는 러너가 일반적인 러너가 겪은 슬럼프와 불안정한 시기를 조깅으로 극복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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